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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1:2-7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지 십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요시야의 아들 유다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 십 일년 말까지 임하니라 이 해 오 월에 예루살렘이 사로 잡히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참고문헌
개역한글
칼빈주석
김희보, 구약 요엘 주해
첫 번째 교훈-서론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자로 먼저 “장로들”(욜1:2)을 말하였습니다. 그들의 신앙과 사역과 인품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거민들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목사들의 신앙과 사역과 인품에 따라서 신자들의 삶의 방향이 달라지게 됩니다.(히13:7) 그래서 목사들은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해야 합니다. 그가 주시는 결말에 순응해야 합니다. 이어서 요엘 선지자는 “모든 거민들에게”도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목사들만 들으라는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신자들도 들어야 합니다. 신자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있어서 남녀노소, 신분의 차이는 문제가 안 됩니다. 어떤 자도 제외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 교훈-본론 1.
그래서 하나님은 “장로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욜1:2) “땅의 모든 거민아 너희는 귀를 기울이지어다”(욜1: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들을지어다”(욜1:2) “귀를 기울이라”(욜1:2)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는 자들의 마음의 강퍅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성경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할까요? 왜 성경을 듣는 것을 지루해 합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이들의 마음이 완악해져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요엘 선지자는 이들의 주의를 하나님의 손길로 돌리고 있습니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열조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욜1:2) 그리고 그 일은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해야 할 것”(욜1:3)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교훈-본론 2.
일어난 사건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보여주신 아주 무서운 징조입니다. 또한 그것은 미래에 일어날 어떤 사건의 아주 두려운 전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자연 재앙을 만납니다. 또한 난리와 난리, 전쟁의 소문을 듣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앞으로 있을 어떤 아주 두려운 일의 전조가 됩니다. 욜1:2절을 보시면 “너희의 날에나 너희 열조의 날에 이런 일이 있어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흔히 볼 수가 없는 아주 희귀한 일이 일어난 것을 사람이 보았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놀라지 않습니까? 그것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하늘에서 한가롭게 쉬거나 놀고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한가롭게 잠자고 계십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은 계속해서 일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증거를 멈추신 적이 없습니다.(행14:17, 롬1:20) 우리는 날마다 우리에게 비추이는 해를 봅니다. 또한 날마다 우리에게 해를 비추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습니까? 참새를 볼 때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절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네 번째 교훈-적용과 결론
하나님은 때로는 아주 비상한 방식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런 비상한 역사는 때로는 아주 보기 드문 희귀한 재앙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비상한 역사가 욜1:4절에 있는 곤충의 재앙이었고, 욜1:6절에 있는 이민족의 침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비상한 역사가 나타나면 우리는 그것을 보고 놀라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의 진기함과 놀라움을 보고 우리는 깜짝 놀라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마음이 무지해지고 강퍅해진 유대를 향해서 “나는 하늘에서 한가롭게 놀거나 잠자지 않는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의 능력을 아주 비상하게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이 아주 큰 재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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