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사도행전

사도행전 1:1-3-그리스도의 사역

gracepresbyterian 2026. 3. 21. 03:58

전문은 대한예수교 장로회 은총교회 까페에 있습니다.https://cafe.daum.net/gracepresbyterian/hlvO/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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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1-3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참고

개역한글

칼빈주석

Geneva Bible

디오다티 주석

웨스트민스터 주석

메튜풀 주석

로이드 존스 사도행전 강해

 

설교요약

 

첫 번째 교훈-서론

우리들에게 신앙을 일으켜 주는 내용, 즉 그 지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복음에 있습니다. 이 복음이 없이는 기독교도 없습니다. 복음이 있는 곳에는 교회가 세워집니다. 반대로 교회가 이미 세워져 있다고 해도 복음이 없는 곳에는 교회가 없어지거나 아니면 교회가 급속히 타락해 버립니다.

 

2. 두 번째 교훈-본론 1.

누가는 누가복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과 가르치신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과 가르치신 것”(행1:1)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3. 세 번째 교훈-본론 2.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셨지만, 몸이 너무 지쳐 있어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지고(마27:32; 눅23:26) 골고다 언덕(마27:33; 눅23:33)에 가셔서, 그 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행1:3에서 말씀하는 “해(고난)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려 버리고 삼일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이 행1:3에서 언급하는 “살아있음”입니다.

 

4. 네 번째 교훈-본론 3.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십니까? 좁게는 기독교는 예수라는 한 인물의 역사입니다. 그가 이 세상에 어떻게 오셨고(성육신), 어떻게 병자를 치료하셨고, 어떻게 죽은 자를 살리셨고, 귀신을 쫓아 내셨고, 어떻게 죽으셨고, 어떻게 부활하셨고, 어떻게 승천하셨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실제 일어났던 역사입니다. 그 사실의 바탕 위에 기독교가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분명하게 말씀 드려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그가 메시야였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중보자의 직분을 행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의 구속자입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자입니다. 그는 영원한 지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즉 그리스도의 사역의 열매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오직 교훈, 즉 교리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유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6. 다섯 번째 교훈-적용과 결론

우리는 모두 본성적으로 악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 태어나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면서 살아갑니다.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겔18:4)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평안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지만 우리는 불의합니다. 죄를 깨닫는 자가 있어도 그런 자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갖는 것은 무엇입니까? 죄를 깨닫는 자에게 하나님은 기쁨의 근원이 아니라 두려움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순교가 아닙니다. 어떤 사랑의 모범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대신한 처절한 형벌적인 죽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마치 우리가 하나님께 형벌을 받은 것과 같으며, 우리가 죽음을 당한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한 형벌을 받았고, 죽음을 당했다면 율법은 더 이상 우리에게 요구할 것이 없습니다. 그 만큼 형벌은 그리스도 안에서 철저하게 집행된 것입니다.

 

주님은 죽음에서 부활했습니다. 주님은 철저하게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에서 주님이 거두신 승리를 확신하게 되며 우리도 마침내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신앙이 세워져 있지 않으면 복음은 세워질 수 없습니다. 부활신앙이 부정되는 곳에서는 어떤 신앙도 없게 됩니다. 단지 우리를 미혹하는 이단적 가르침만 있게 될 것입니다. 다음에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자로서 오늘도 그가 주신 말씀으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즉 성경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닙니까? 그것이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이후에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셨습니다”(행1:2) 즉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사도들이 가르쳐야 할 복음은 주께서 성부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정확히 복음, 혹은 우리의 신앙의 규범은 삼위일체의 외적 역사로 주어진 것입니다. 성부께서 명령하시고, 성자께서 명령하시고, 성령께서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외적 사역은 분리되지 않기에, 성부께서 자신으로부터 성자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행1:2절의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명하셨다”는 의미이고, 더 자세히는 “성부와 성자께서 성령으로 명하셨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셨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셔서 지금도 천상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천상의 사역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사도행전은 그리스도께서 천상에서 하시는 사역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그리스도께서 천상에서 일하고 계시며, 그 일은 “원수들이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히10:13)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