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로마서

로마서 1:9-13 로마의 성도들을 견고케 하고, 격려를 받기를 원하는 바울

gracepresbyterian 2026. 5. 24. 23:26

1:9-13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참고문헌

개역한글

칼빈주석

이상근주석

Geneva Bible

디오다티 주석

웨스트민스터 주석

메튜풀 주석

메튜헨리 주석

로이드 존스 로마서 강해

 

첫 번째 교훈-서론

1:9절에 있는 말씀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사도로 보냄을 받아서(13:2-3) 하나님을 섬겨 헌신하였던 모든 사역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도바울이 섬겼다”(1:9)라는 단어를 쓸 때, 그 섬김, 곧 사역이 예배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모든 말씀의 사역자들이 자신들이 맡은 직분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다면, 즉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말씀의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 사역자들은 하나님께 귀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교훈-본론 1.

또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섬김이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1:9)”의 섬김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섬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사역은 이 표현에 제한되어야 합니다. 만약 이 표현을 벗어난다면, 그것은 진정한 섬김이 아니며, 예배도 아닙니다. 이 표현은 사도 바울의 설교 사역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역은 결국은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교리 전체를 전파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20:32) 사실 교회가 가르치는 내용이 무엇인가? 의 문제는 결국은 기독교가 진실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의 문제를 야기 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교훈-본론 2.

그 다음에 사도 바울은 내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긴다”(1:9)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바울의 섬김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과 두려움과 열정으로 섬기는 신실한 섬김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이러한 섬김은 위선이 없는 섬김입니다. 참된 신앙으로 이루어진 섬김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 의해서 드려지는 이러한 섬김만을 받으십니다. 분명히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적인 성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영적인 성전 안에서, 즉 우리에 의해서 드려지는 이러한 진실한 섬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삶의 순간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보시기 때문에, 우리의 섬김이 어떤 종류의 섬김인지도 하나님이 아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배드리기 위해서 오는 과정도,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순간도 모두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그러한 영적인 예배가 되도록 늘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네 번째 교훈-본론 3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증진과 유익을 위하여 그들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1:11)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서 그들을 견코게 하기를 원합니다.(1:11) 물론 여기에서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1:11)라고 말씀할 때, 그것은 말씀의 사역으로 제한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가장 크게 진보를 한 성도일지라도, 즉 아무리 훌륭한 성도들일지라도 계속해서 더욱 더 견고해져야 합니다.(1:11) 그러나 만약 뿌리가 약하다면 넘어지기 쉽습니다. 뿌리가 약해서 나무의 뿌리가 아래로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한다면, 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신자들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뿌리가 약한데 어떻게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여섯 번째 교훈-적용과 결론

그런데 사도 바울은 롬1:12절에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오해할 수 있는 소지를 제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복음의 초보적인 원리를 다시 가르침 받아야 할 자들로 여기고서, 책망을 받아야 할 자들로 여기고 있다는(5:12) 오해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배워서 권면과 격려를 받고 싶다는 것이 롬1:12절의 말씀입니다. 우리들 각자의 영적 진보에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을 만큼 은사가 전혀 없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리스도인들 각자는 성도의 교제 가운데서 서로 권면과 격려를 받는 가운데서 견고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라는 사실이, 바울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며, 신자이며,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라는 사실을 없어지게 합니까? 그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리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지체들이라고 생각될지라도, 그들로부터 권면과 격려와 위로를 받으며, 그들에 의해서 용기가 북돋아 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을 통하여서 아무리 영적으로 성숙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전히 주위의 지체들로부터 오는 도움이 필요로 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들 중 그 누구도 선생이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역시 그들에게 배우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피차간에 유익을 얻기를 원합니다. 피차간에 권면을 받기를 원한 것입니다. “피차 안위를 얻으려 함이라”(1:12) 사도바울의 말씀에서 여러분은 어떤 것을 느낍니까? 나는 성숙했기 때문에 배움이 필요없다. 혹은 선생이 필요없다. 내가 하나님을 믿은 시간과 경륜이 있는데 배움과 선생이 필요 없다. 나는 초신자에게서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나 그것은 교만입니다. 그것은 자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