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엘서

요엘서 2:13-14 : 마음을 찢는 회개와 하나님의 인애

gracepresbyterian 2026. 5. 27. 22:20

2:13-14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참고문헌

개역한글

칼빈주석

디오다티주석

웨스트민스터주석

김희보, 구약 요엘 주해

 

첫 번째 교훈-서론

2:13절에서 회심의 방법과 회심의 근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심의 방법은 마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가죽을 베는 것(4:4)과 마음을 찢는 것은 같은 의미이며 그것은 곧 마음의 할례입니다.

 

두 번째 교훈-본론 1.

그러면 왜 옷을 찢지 말라고 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신앙이 없고, 마음의 슬픔과 애통이 없으며, 마음의 진실과 정직이 없는 모든 외식을 금지하는 말씀입니다. 결국 외식은 겉모양만 그럴싸하게 표시하는 것이고, 실제로 마음에 있는 악을 그대로 놔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유대인들의 위선적인 경향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타고난 죄악입니다.

 

세 번째 교훈-본론 2.

다음으로 회심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인애입니다. 2:12절에서 하나님이 회개하라고 명령하실 때,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하나님에게 돌아오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것이라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때문입니다.(2:13) 2:13절을 보시면 인애가 크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택한 백성들을 향하여 변하지 않고, 끝이 없이 참으시는, 선택을 통하여 나타나는 끝이 없는 사랑, 영원한 자비, 진실한 긍휼 등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애가 너무나 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무한한 인애로 그의 택한 백성을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교회가 징계를 받아도 이 말씀이 없다면 어떤 소망도 없고, 회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그 분 때문에 우리의 불신과 절망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인애를 바라보게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절망이 불가능합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이제 끝났다. 너희는 용서받을 길이 없다고 우리를 절망시키려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헛되게 부르신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를 그의 끝없는 진실한 인애로 용서하실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네 번째 교훈-본론 3.

그래서 하나님은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시지 않으십니다”(2:13). 재앙을 내리시지 않는다는 의미는 유대가 멸망할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죽음을 당할 그런 파멸을 주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이라도 고집 세고, 교만한 성품을 죽이기 위해서 고된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이라도 여전히 죄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또한 택한 백성이라도 어떤 면에서 특히 취약한 죄악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쉽게 분노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만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이런 취약 한 것도 다루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교훈-적용과 결론

그래서 하나님은 남은 자들에게 축복과 자비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징계할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재앙을 당할 것이다. 그래서 너희의 교만한 목이 굽혀져서 하나님의 징계에 굴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징계에 굴복한 결과는 택한 백성의 성화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의 확실한 표징은 다시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는 것”(2:14)입니다. 택한 백성들조차 고집 세고 교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죄악 때문에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고된 징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신앙과 회개로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참으로 인애하신 모습을 분명히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인애로우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악은 하나님의 인애를 가리우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하나님의 인애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징계를 받고 주께 돌이킬 때 하나님은 그의 인애를 나타내시는데, 우리 편에서 그것을 하나님이 인애로 바꾸신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행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42:8)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에게 돌아가야 하는 예배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래서 소제와 전제가 끊어졌던 성전에 다시 소제와 전제가 드려지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게 하신다는 뜻이고, 이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에게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