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2:15-17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참고문헌
개역한글
칼빈주석
디오다티주석
웨스트민스터주석
김희보, 구약 요엘 주해
첫 번째 교훈-서론
욜2:15절에서 “나팔을 불라는 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룩한 금식을 선포하고 성회를 공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금식은 사적인 것이 아니고 공적인 금식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핑계대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의 보좌에 서서 겸손히 탄원하도록 준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두 번째 교훈-본론 1.
그러면 욜2:16절의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장로들은 모든 백성들 앞에서 먼저 솔선수범해야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장로들 역시 스스로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먼저 언급되었습니다. 다음에 아이들과 유아들이 언급됩니다. 아이들은 그렇다 쳐도, 젖 먹는 유아들은 무엇을 알겠습니까? 무엇을 이해하겠습니까? 그런데 마치 그들 역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하는 죄인 인 것처럼 성회로 나오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여호와의 날”의 임박한 심판에서 “소아와 젖 먹는 아이들도 제외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 교훈-본론 2.
어린 자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죄책 때문에 어린 자녀들에게 까지 죄에 대한 형벌이 돌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큰 충격이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깊이 숙고하고 스스로 회개의 표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유아들은 아직 철이 없습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직감적으로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울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도 이런 공적인 회개의 모임에서 무엇인가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과 무엇인가 신앙과 회개의 분위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라면서 서서히 신앙의 바른 자세에 대한 어떤 골격들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공적인 회개의 성회 가운데서, 혹은 예배가운데서 하나님에 대해서, 그 분의 거룩성에 대해서, 신앙과 회개에 대해서 어떤 것들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들의 피부로 무엇인가를 느끼고 배우는 것입니다.
네 번째 교훈-본론 3.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전체 백성을 위해서 전체 백성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했습니다.(욜2:17) 이것은 제사장들이 그리스도의 예표였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 역시 율법의 모형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백성들 스스로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보자를 통하여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기도하게 했습니다”(욜2:17; 왕상6:3 참조) 백성들은 바깥 뜰에 있었고, 제사장들은 안뜰에 있었습니다. 즉 제사장들은 법궤와 백성들 중간 사이에 있었고 여기서 백성들을 위해서 울며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백성들은 기도를 드리는 제사장을 중보자로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그리스도 예표) 그러나 제사장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레위 지파를 자신의 수종자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는 레위 언약이(말2:4-5) 지속된 것입니다.
다섯 번째 교훈-적용과 결론
그러면 제사장들은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첫째,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욜2:17)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가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이 소망이 있고 용서를 바랄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은혜언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비롭고 값없는 언약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용서받을 수 있는 근거였고 기초였습니다. 언약을 떠나서는 그들 안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지자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에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욜2:17) 하나님의 기업이 비난거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기억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필요만 구하는 것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실제로 범죄 한 이스라엘의 구원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사26:13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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