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엘서

요엘서 2:24-27 하나님의 참된 축복 :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

gracepresbyterian 2026. 6. 17. 22:12

2:24-27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참고문헌

개역한글

칼빈주석

디오다티주석

웨스트민스터주석

김희보, 구약 요엘 주해

 

첫 번째 교훈-서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시작과 완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른비(가을비, 10-11)와 늦은비(봄비 3-4)로 상징되었습니다. 이른 비가 충분히 와야 건기 동안 딱딱해진 땅이 부드럽게 되어서 땅을 갈기 좋게 되고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질 수 있습니다. 늦은비가 와야 곡식이 무르익어서 풍성한 추수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런 이른비와 늦은비의 결과가 욜2:24절에 있습니다. (2:24)은 보리보다 값진 것으로 모든 곡식을 대표하는 최고급의 곡물이었습니다. “새포도주와 새 기름”(2:24) 역시 고급의 농산물입니다. 따라서 이것들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자주 말씀하셨습니다(7:13, 11:14, 31:12, 2:8) 이렇게 늦은비와 이른비가 와서 풍성한 추수를 하게 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결론에 대해서 욜2:26절에서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만족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교훈-본론 1.

새포도주와 새 기름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전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1:3)”을 상징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지상적 축복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령한 은혜와 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신구약의 통일성을 말할 때, 신구약의 차이도 말합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통일성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구약은 하늘에 속한 유산을 지상적 축복으로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치 거울을 바라 보듯이 지상적 축복이라는 거울로 참된 기업을 소망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지상의 축복에 대한 약속이 제시하는 궁극적 목표 혹은 상급은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요엘서에서 지상적 축복을 약속하므로 주시는 자비의 약속은 우리 각자를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초대하는 약속입니다.

 

세 번째 교훈-본론 2.

2:26절에서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어서 그 마음에 만족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송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화해한 자들이 자신들에게 풍요로움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경배한다는 의미입니다. 한 마디로 이들의 신앙과 회개의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먹고 배부르면 그 마음이 오히려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13:6, 32:15; 8:12-14) 지상에 속한 복을 받는 것이 축복입니까? 저주입니까? 만약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받고도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교만해 진다면 그것은 저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종교성을 바르게 열매 맺게 하는 것은 모든 선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하나님께서 화해하셨다는 증거로서 베푸시는 이 모든 축복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과 고백과 감사와 찬양입니다.

 

네 번째 교훈-본론 3.

특히 욜2:27절에서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계심을 알리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성막과 성전으로 그들 가운데 계심을 알리셔서 그들의 보호자이시며 구원자이심을 알리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계신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임마누엘”(7:14, 1:23)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한 마디로 구름기둥과 불기둥, 성막과 성전의 참된 성취,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2:27)라는 말씀의 참된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초대되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 은혜언약을 결코 잊어버리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은혜언약은 반드시 언약의 중보자가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언약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모든 고난에서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토록 친절히 대해 주십니까? 왜 우리를 이토록 기이하게 대접해 주십니까?(2 :26)

 

다섯 번째 교훈-적용과 결론

기이하게 대접한다는 말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우신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에게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기이한 일은 단지 큰 이적을 베풀어서 구원하여 내신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약에서 베푸신 기이한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나시르 사람들과 선지자들을 일으켜서 그들을 지도한 것입니다(2:11).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행하신 하나님의 큰 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자비롭게 대해주시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선택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자들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시기 위해서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셨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그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십니다. 그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와 화해 하셨습니다. 그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친히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무지와 몽매로부터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