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정에 소환되어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것을 받아내신 그리스도

gracepresbyterian 2026. 5. 24. 23:43

주님은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지만 죄는 없으십니다.(4:15) 즉 주님은 흠도 티도 없습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에게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내면에서 나타나는 공포, 두려움, 슬픔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고민하고 슬퍼하시며 번민하신 것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죽음을 당해야 한다는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육체의 고통을 겪고 마침내 영과 육이 분리되는 죽음 때문에 주님이 고뇌하시고 번민하신 게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잔”(26:39, 42)이라고 표현되는 성부께서 주시는 고통의 쓴 잔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죽음의 의미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완전하게 받는데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죽음은 단지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 전체를 와해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무로 돌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이 고뇌하시며 슬퍼 하신 것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속죄제물로 드려질 때 임하게 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때문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정 앞에 소환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정에서는 창세기 2장의 경고가 선언되고 집행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가 그리스도에게 모두 쏟아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인 된 자들에게 쏟아지는 진노는 그리스도 외에는 그 누구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 입니까? 창세기 2장에서 경고되고 있는 죽음은 실제로 우리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진노를 그대로 받는다면 존재 자체는 무로 돌아갑니다. 오직 그 진노를 받아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하나님 뿐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속죄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성자께서 자신의 인성을 끝까지 붙들고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완전히 받기 전에 그리스도의 인성은 무로 돌아갑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를 완전히 받아내어서 우리의 모든 죄가 해결되기까지 성자는 자신의 인성을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를 받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그리스도께서는 그 끔찍한 두려움에 몸서리 쳤던 것입니다. 우리는 물론 그 진노를 다 받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단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외에 그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를 다 받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 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지옥에서 영원토록 형벌을 받아도 하나님의 공의가 완전히 만족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공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만 만족 된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그리스도께서 받아야 하는 죽음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이 포함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두려움을 끝까지 견디어 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진노의 깊은 심연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단지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이미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었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